[앵커]
단순한 심부름으로 위장해 수억 원을 가로채려던 보이스피싱 수거책이 한 세탁소 사장님의 날카로운 눈썰미에 덜미를 잡혔습니다. 사장님의 기지와 빠른 신고 덕분에 피해자는 전 재산을 지켰고, 범죄 조직의 윗선까지 줄줄이 검거됐습니다.
박현우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경기남부경찰청이 보이스피싱 조직의 핵심 수거책과 인출책 등 3명을 구속했습니다. 이들을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다름 아닌 동네 세탁소를 운영하는 50대 주민 김명수 씨였습니다.
■ "정장 바지 주머니 속 5천만 원"…위험을 감지한 눈썰미
사건은 며칠 전 오후, 한 20대 남성이 급하게 세탁소로 들어와 정장 바지 세탁을 맡기면서 시작됐습니다. 남성이 나간 뒤 김 씨는 주머니를 확인하다가 빳빳한 5만 원권 현금다발 뭉치를 발견했습니다. 그 금액은 무려 5,000만 원에 달했습니다.
일반적인 손님이라면 결코 주머니에 넣어둘 리 없는 거액이었습니다. 김 씨는 남성이 세탁을 맡길 당시 극도로 불안해하며 주변을 살피고, 계속해서 누군가와 비밀스럽게 통화하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직감적으로 보이스피싱 범죄임을 확신한 김 씨는 즉시 돈을 그대로 두고 112에 신고했습니다.
■ 사장님의 연기력과 경찰의 매복…작전명 '세탁물 수거'
신고를 받은 경찰은 세탁소 내부와 주변에 사복 형사들을 긴급 배치했습니다. 잠시 후, 돈을 두고 간 사실을 깨달은 범죄 수거책이 허겁지겁 세탁소로 다시 찾아왔습니다.
김 씨는 당황하지 않고 "바지는 이미 세탁기 안에 들어가서 시간이 좀 걸린다"며 자연스럽게 말을 건네며 시간을 끌었습니다. 수거책이 의심 없이 의자에 앉아 대기하는 순간, 잠복해 있던 형사들이 들이닥쳐 그를 현행범으로 체포했습니다.
■ 전 재산 지킨 할머니…사공(사장의 공로)으로 조직 일망타진
조사 결과, 이 돈은 저금리 대출을 대환해 주겠다는 사기극에 속은 70대 독거노인이 집을 담보로 잡혀 마련한 전 재산이었습니다. 김 씨의 빠른 대처가 없었다면 그대로 범죄 조직의 손에 넘어갈 뻔한 돈이었습니다.
경찰은 체포된 수거책의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해 상위 조직원들과의 접선 장소를 파악했고, 당일 저녁 서울 모처에서 대기 중이던 현금 인출책과 송금책까지 추가로 검거하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 "내 부모님 일 같아서…당연한 일을 했을 뿐"
검거에 기여한 공로로 경찰 표창과 신고 포상금을 받게 된 세탁소 사장님 김 씨는 인터뷰에서 겸손한 소회를 밝혔습니다.
김 씨는 "돈 뭉치를 보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고, 피해자의 피눈물이 떠올랐다"며 "그저 내 부모님이 당할 수도 있었던 일이라 생각하고 행동했을 뿐"이라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평범한 시민의 용기 있는 눈썰미와 침착한 대처가 보이스피싱이라는 거대한 악질 범죄로부터 이웃의 소중한 삶을 지켜냈습니다.